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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6-04 10:04
자살에 대한 예방교육이 필요한 이유 (조선일보 6월4일자)
 글쓴이 : 미강
조회 : 5,854  
미강 정신건강의학과 / 정신과

박수경
 

자살, 예방할 수 있는 '고독의 병'입니다

  • 입력 : 2009.06.04 03:24
 

"자살은 쉬쉬하면 할수록 음지화" 미(美)·일(日),
예방교육 대대적으로 실시 우린 한 해 예산 겨우 5억~6억원
1년 자살자 교통사고사(死)보다 많아

지난달 29일 오후 6시쯤, 충남 모 고등학교 1학년 A(17)양이 동급생 친구와 단둘이 학교 근처 아파트 단지로 바람을 쐬러 갔다. 두 소녀는 18층 아파트 옥상 옆 복도에 쪼그리고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A양은 친구에게 "대학생 남자친구가 며칠 전 인터넷 메신저로 '헤어지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털어놨다.

오후 9시쯤, A양 휴대전화가 울렸다. 담임교사가 "야간자율학습 안 하고 어디 갔느냐"고 물었다. A양은 "금방 들어간다"고 대답했다.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선 친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순간 등 뒤에서 '쾅' 소리가 들렸다. A양이 복도 한쪽에 놓인 장독을 밟고 창문에 올라서서 훌쩍 몸을 날린 것이다.

친구는 경찰 조사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A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A양은 중산층 가정의 자녀로, 전교 10등 안에 들었다.

자살이라는 '만성 질환'이 계속 번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자 수는 2003년 처음으로 '1만명 선'을 깨고 1만898명을 기록했다. 이후 단 한 번도 1만명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2007년 기준 한국의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은 24.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이며 가입국 전체평균(11.9명)을 두 배 이상 웃돈다.

2000년 1만2048명에 달하던 연간 교통사고 사망자는 2007년 7604명으로 줄어든 반면, 자살자는 같은 기간 6444명에서 1만2174명으로 늘었다. 자살자 수는 2003년을 기점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추월했다.

자살 급증세는 젊은이들과 여성들 사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지난 두 달간 강원도에서만 24명이 동반자살을 시도해 14명이 숨졌다. 상당수가 10~20대였다.

보건복지가족부 류지형(55)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실업과 불황 등 경기 변동의 충격을 막을 복지제도가 부족한데다 이혼율이 높아졌고, 유명인 자살을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까지 겹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살은 개인의 불행을 넘어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지만, 자살을 막기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2006년 보건복지부(현재 보건복지가족부)의 용역 연구에 따르면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연간 1조2000억~3조1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자살 예방 5개년 종합대책'을 추진했다. 2010년까지 18명선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정부가 실제로 자살 예방교육에 투입한 예산은 한 해 5억~6억원에 불과했다. 정부는 자살률을 낮추지 못한 채 지난해 말 1차 계획을 종료했다.

전문가들은 자살률을 낮추려면 예방교육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울증 환자와 자살 미수자 치료뿐 아니라, 일반인의 인식도 바꿔야 자살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육성필(42) 한국QPR 자살예방연구소 소장은 "교사들에게 자살 예방 교육을 하러 가면 '괜히 수업 중에 자살 얘기를 꺼냈다가 아이들이 따라 죽으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학교와 기업체에 자살 예방 교육을 제안해도 "우리 학교(회사)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라도 들었냐"며 거절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육 소장은 "자살은 쉬쉬하면 할수록 음지화한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1960~70년대에 걸쳐 "자살이 개인의 선택이냐, 국가가 개입할 사안이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이후 이 논쟁은 "자살은 예방이 가능한 사회적 문제"라는 결론으로 수렴됐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는 1970년대부터 정신질환자나 자살 미수자뿐만 아니라 중·고생(미네소타주), 15~24세 젊은이(메릴랜드주) 등을 대상으로 자살 예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미국의 자살률은 우리나라의 절반 이하(10.1명)다.

1990년까지 인구 10만명당 30명이 자살해 '자살의 수도'라고 불렸던 핀란드의 경우 10년 동안 '국가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해 자살률을 18명(2005년 기준)까지 낮췄다. 1990년 인구 10만명당 20명 이상이 자살하던 덴마크도 학생, 교사뿐만 아니라 학부모에게까지 광범위한 자살 예방 교육을 실시해 자살률이 우리나라의 절반 이하(11명)로 떨어졌다.

우리나라도 전국 151개 시·군·구에 정신보건센터가 마련돼 있지만 우울증 환자 관리와 초·중·고생 정신건강검진을 함께 맡고 있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자살 예방교육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지난해 12월 '자살 예방 5개년 종합대책 2차 사업'을 발표하고, 올해 예산으로 594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 설치 등 간접 예산을 제외하고 자살 예방 교육에 직접 쓰이는 돈은 13억원에 불과하다.

이런 소극적인 대처는 이웃 일본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국, 헝가리와 함께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자살률이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일본은 2008년 각종 자살 예방 사업에 225억엔(약 2889억원)을 썼다. 이 중 104억엔(약 1335억원)이 문부과학성이 주도하는 학교 자살 방지교육에 투입됐다.


기사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03/2009060301943.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1&Dep3=h1_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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