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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약사회 문제 제기
진통제 논란은 한 약사 단체에 의해 제기됐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이하 건약)는 최근 '의약품 적색경보'라는 성명서를 통해 "두통약, 진통제에 함유된 '이소프로필안티피린' 성분이 혈액질환과 의식장애 등 안전성에 문제가 있으므로 실태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분은 '게보린' '펜잘' '사리돈A' '암씨롱' 등 국내에서 시판 중인 28개 진통제에 포함돼 있다. 건약 측은 독일 독극물 정보센터의 임상 연구자료를 인용, 이소프로필안티피린 성분은 혼수를 일으킬 빈도가 높으며, 기면(嗜眠)이나 경련 등도 자주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에서는 이 성분을 함유한 약이 시판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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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 ▲ 신지호 헬스조선 기자 sppho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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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약 측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이 성분이 포함된 약이 허가될 1970년대 당시에는 이 성분에 대한 독성시험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그 이후 부작용에 대한 모니터링도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지금이라도 안전성 검토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학계에서도 국민의 안전한 약 사용을 위해 제대로 된 검증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연세대의대 약리학교실 정재용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소프로필안티피린이 적합한지, 아니면 부작용이 있는지 객관적 임상시험 자료가 없어 안전성 여부를 판단하기는 힘들다. 이번 기회에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약사들 입장은 제각각
이소프로필안티피린이 든 진통제를 시판 중인 제약사들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수 십 년간의 판매를 통해 이미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제약사들이 다수지만, 이 기회에 논란이 되는 성분을 뺀 새 진통제를 출시하고 공격적 마케팅을 펼치는 제약사도 있다.
'사리돈A'를 수입 판매 중인 바이엘쉐링제약 관계자는 "한국에서 20년간 약을 판매해왔으나, 지금까지 보고된 부작용이 한 건도 없었다. 이보다 더 안전한 약이 있을 수 있나?"고 되물었다. 그는 "이소프로필안티피린 성분이 든 약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 58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외국에서 보고된 부작용도 경미한 알레르기 반응 정도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청 조사결과가 빨리 나와 논란을 종식시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게보린'을 시판 중인 삼진제약 관계자도 "약의 안전성에는 문제가 없다. 식약청 발표를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펜잘'을 시판 중인 종근당은 최근 이소프로필안티피린 성분을 뺀 '펜잘큐정'과 '펜잘 내복액' 신제품을 내놓고 오히려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종근당 한 관계자는 "유해성 논란이 일고 있는 성분을 빼고 대신 안전성이 입증된 '에텐자미드' 성분을 추가한 제품을 출시했다"며 "소비자가 불안해 하고 있어 예전의 '펜잘'을 신제품으로 교환해주는 '리콜'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식약청, 내년 초 입장 표명
식약청은 이르면 내년 초쯤 이소프로필안티피린의 안전성 검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식약청은 이를 위해 국립독성과학원 등에 안전성 정보 검토를 의뢰한 상태다. 또 해당 제약사에도 이 성분이 들어간 제품의 안전성 관련 자료를 제출하라고 지시했다.
식약청 의약품관리과 김상봉 사무관은 "관련 문헌을 분석하고, 전문가들에게 자문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역학조사까지 한다는 계획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고 조사 중"이라며 "다만 특정 국가에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거나, 반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안전성 여부의 결정적인 근거는 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식약청에 따르면 일본,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이 성분의 약을 시판 중인 것으로 확인된 나라만 21개국에 달한다.
또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이 성분을 사용하지 않는 나라들도 부작용 때문에 시판이 '금지'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식약청의 입장이다. 아울러 건약 측이 주장하는 혈액 질환과 의식 장애 등의 부작용 가능성은 이미 현재의 약 설명서에 명시돼 있으며, 아직 국내에서 이소프로필안티피린 제제로 인한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은 점 등도 고려하겠다고 식약청은 밝혔다.